나는 천성이 공대생이었다. 대학교 입시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안 시점 이후로 공대 이외의 전공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컴퓨터과학(이하 컴과)을 공부하고 있다.

내가 컴과를 선택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부터 컴퓨터에는 관심이 있었고, 이걸 하면 평생 재밌게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처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우연히 아버지 친구분이 계시는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분께서 원하는 책 하나를 선물해준다고 하셨다. 그 때 골랐던 책이 마이크로소프트 프런트페이지로 홈페이지 만드는 책이었다. 대체 왜 그런 책을 골랐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두꺼운 그 책을 들고 홈페이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던 걸 떠올릴 때 마다, ‘아, 역시 공대생은 공대생이었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때만 해도(이렇게 쓰니까 엄청 옛날인 것 같지만 불과(?) 7년전의 일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굉장히 심했다. 우리학교의 경우 전체 학급수가 한 학년에 17반정도 있으면 그중 5반정도가 이과였다. 그마저도 각 학급별 인원수는 문과보다도 훨씬 적었다. 5반은 선택과목때문에 나눠진, 정말 최소한으로 필요한 반의 수였던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서 공대는 절대 가면 안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래도 난 공대에 가고 싶었다. 지금은 수능이 영역별로 복잡해진 것 같아서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이과가 문과보다 커버해야할 공부 범위도 훨씬 많았다. 다행히 수학에는 항상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 대부분의 이과 학생들이 느끼는 것일 테지만(혹은 나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어려운 것을 공부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아마 '이과부심'이라고 말하는 그런 기분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결국에는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이 전공을 선택했다.

처음 대학교를 입학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분명한 목표가 있지는 않았다. 컴과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컴퓨터를 좋아했던 것이 있지만, 그렇다고 프로그래밍을 따로 공부한 적은 없었다. 혹시 전공이 생각보다 맞지 않을까봐 걱정도 조금 됐다. 하지만 전공을 받고, 전공 수업을 시작한 이후로 그런 걱정은 전부 사라졌다. 공대인 만큼 실습도 많고, 프로젝트도 많고 수업 시간의 절대량 자체도 문과보다 많았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대학생활은, 그렇게 어려운 그런 무언가를 붙들고 앉아서 학우들과 밤새 고민하고, 학구적인 무언가를 성취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컴과에서 그런 로망을 이루었냐하면, 꽤나 그러했다. 특히 밤은 정말 수도 없이 샜다. 노트북 하나 들고 친구집에 가서 학기 프로젝트 한다고 3일씩 숙식하고 그랬다. 주3일로 학교다니는 문과 애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다. 어떤 때는 너무너무 피곤해서, 한번 실컷 자는게 꿈이었던 때도 있다. 그래도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누가 뭐래도, 난 내 전공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지금, 취업 시장이 이 지경이다. 공대생이 아니면 취업이 불가능한, 그런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컴과는 명백한 수요 과잉이다. 제대로 된 컴과에서 정상적으로 커리큘럼을 마친 사람이 취직을 못하는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원한다면 외국에도 길이 널렸다. 대학원을 가도, 학사만 취득해도,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해도 취직이 가능한 그런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것은 내가 입학할 때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꽤 행복한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공대에 와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에는 반대다. 나는 '아 이제 컴과는 취직 걱정은 없네, 다행이다'라던가 '아 컴과는 취직 잘되서 참 좋아'라고 진심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난 컴과가 취직이 잘되서 좋은게 아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고, 재밌어서 좋은거다. 결국에는 좋은게 좋은거지만, '아 공대생들은 취직 잘되서 좋겠다'라는 시선을 받으면 약간 불쾌하다. 나는 공대를 취직 잘되서 온게 아니다. 내가 정말 좋아해서 온거다.

물론 인문계열의 취업률이 낮은 것은 분명한 문제다. 모두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맞다. 이는 인문계나 이공계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어떤 인문계열 학생이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전공을 선택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취직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정말로 큰 사회적 문제이다. 그들도 좋아하는 공부를 위해서 대학교에서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다. 그들이 공대생보다 우월하지 않듯이, 공대생도 그들보다 우월하지 않다. 그들은 취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취직이 너무 안되서 '아, 공대를 갈 걸 그랬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그런 취준생은 취업할 자격이 없다. 대부분의 내가 아는 공대생들은, '여자가 인문계처럼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할지언정, 대우가 나쁘다고 '문과를 갈 걸 그랬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물론 중간에 상경계열 등으로 전과를 하는 사람들은 몇몇 보았다. 그들은 대우가 나빠서 문과를 가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다. 만약 취업률때문에 공대를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은, 학부때 공대로 옮겼어야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문과대학에서 공대로 편입한 사람은 한명도 본 적이 없다. 학부 4년을 바쳐 자기 전공을 공부해놓고 이제와서 취업때문에 공대가 아른거린다면 자기가 뭘 진짜 좋아하는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자, 지금까지 인문계열 취준생들이 기분나쁠 수 있는 이야기를 실컷 했다. 허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기 전공을 정말로 좋아하고 그 전공을 살려 일을 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직업이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기분나빠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취업시장바닥은 분명히 이상한게 맞으니까. 물론 공대생이 부러울 수도 있다. 취직이 잘되는 게 부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걸 바꿀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대가 취직이 잘 된다고 공대를 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면 몇년 후에 다시 공대의 대우가 나빠지면(물론 지금도 대우가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때는 공대 안가길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결국에는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취업난이 있는게 사실이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게 당연한 사회이다. 그런데 그걸 다른 전공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전공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전공이니까.

비록 지금은 힘들더라도, 결국에는 누구라도 취직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평생 일해도 서울에 집하나 못사는 세상이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나 하나 행복하게 살 수는 있을거다. 인문계열이나 이공계열이나 상경계열이나 다들 잘 취업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결과적으로 이 글은 공대 인문대 나눠서 다이다이 뜨는 글이 아니다. 취업난이 있으니 사회를 갈아 엎자는 그런 거창한 글도 아니다. 다들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얼척없는 글이다.